미주흑인의 시와 사조

美洲黑人(미주흑인)의詩(시)와 思潮(사조)
『린컨』大學英文學敎授(대학영문학교수)
유리씨스·리

신천지 4.1 (1949/01/01)
김소역

奴隸船(노예선)이 『뿌렉·이보리』(黑人奴隸(흑인노예))를 잔득 싣고 『아푸리카』에서 美大陸海岸(미대륙해안)에 殺到(쇄도)하고 있을 때 二人(이인)의 뛰어난 黑人奴隸(흑인노예)가 十八世紀(18세기)에 벌서 詩集(시집)을 發行(발행)하였다는 것은 놀랜만한일이다。그黑人時人(흑인시인)의하나가 卽(즉)『햄몬』인데 그는 『롱아랜드』의 『퀴인村(촌)』의 一文學鑑賞力(일문학감상력)이 있는 主人(주인)의奴隸(노예)였었다。그主人(주인)의 親切(친절)로서 그는 一七六O年(1960년)에 『저벽의 마음』이란 詩集(시집)을내었다。그內容(내용)은 大體(대체)로 讚美歌(찬미가)、聖德頌歌(성덕송가)의 範圍(범위)를 버서 못났으며 또 그것은 明白(명백)히 英國(영국)의 非國敎徒(비국교도) 監理派(감리파)의 影響(영향)를 받은것이었다。一七七八年(1778년)『햄몬』은 『피리스·위트레아』壤(양)에게 보내는 글월』을 出刊(출간)하였고 一七七九年(1779년)에는 『十人(십인)의處女(처녀)』一七八二年(1782년)에는 『冬三(동삼)』을 出刊(출간)하였는데 이러한 詩集(시집) 或(혹)은 隨筆集(수필집)은 大體(대체)로 黑人(흑인)의 忠誠(충성)과 神托(신탁)을 讚美(찬미)하는 것으로 『뉴욕州(주)의 黑人(흑인)에게 보내는 글』이란 詩(시)에서는 그의 典型的(전형적) 忠誠心(충성심)을 었볼수있는것이다。文學(문학)하는 奴隸(노예)로서 『햄몬』은 當時(당시) 珍奇(진기)한 存在(존재)이었으며 또 黑人詩(흑인시)의 開拓者(개척자)인 것이다。두 번째의 黑奴詩人(흑노시인)은 女人奴隸(여인노예) 『피리스·위트레이』(一七五三(1753)-一七八四(1784))의 出現(출현)으로 나타났다。女流詩人(여류시인) 『위트레이』는 『햄몬』과 같이 新敎徒(신교도)의 影響(영향)은 받었으나 『햄몬』보다는 非凡(비범)한 才幹(재간)[의] 所有者(소유자)이며 비록 出生地(출생지)는 『아주리카』이라도 彼女(피녀)는 『류잉그랜드』의 主人(주인)밑에서 當時(당시)文學(문학)의 으뜸을 自習(자습)하고 當時(당시)의 文化(문화)一般(일반)이나 宗敎(종교)에 對(대)하야 相當(상당)히 敎養(교양)이 깊었다。女史(여사)의 詩(시)는 그人種的(인종적) 面(면)보다도 그 時代的(시대적) 面(면)이 더많다。十八世紀(18세기) 七八十年(칠팔십년) 代(대)의 典型的(전형적)인 『뉴잉그랜드』人(인)으로서 女史(여사)는 『보스톤』의 전 淸敎徒(청교도)의 代表的(대표적) 思想家(사상가) 詩人(시인)의地位(지위)를 차지 한것이다。『쥬피터 햄몬』은 一八OO年(1800년)에 世上(세상)을 떠났다。그後(후) 一八二九年(1829년) 까지는 第三(제3)의 黑人詩人(흑인시인)이 나오지 못하었는데 『죠─지·모세스·홀튼』은 一八二九年(1829년)에 『自由(자유)의 希望(희망)』을 刊行(간행)하였다。여기서 『홀튼』은 처음 黑人(흑인)의 虐待(학대)에 不平(불평)을 하기 始作(시작)하였으며 『헐벗은 天才(천재)』(一八六五年(1865년))를 내어 놓으면서 그는 反奴隸制度(반노예제도)의 旗幟(기치)을 더욱 明白(명백)히하었다。그리고 그는 初期詩人(초기시인) 답지 않게 유─모아의 氣質(기질)를 가젔으며 때때로 諷刺(풍자)의 毒筆(독필)를 휘둘렀다。그러나 그는 天先的(천선적)으로 奴隸(노예) 反對(반대)의 積極的(적극적) 詩人(시인)이기보다 오히려 『校定(교정)』派(파) 詩人(시인)에 屬(속)한다。어쨋던 그는 自己(자기)들의 處地(처지)를 不平(불평)하고 이에 抗議(항의)할줄하는 最初(최초)의 詩人(시인)이라는 名譽(명예)를 가질것이다。

反奴隸(반노예)의 宣傳(선전)은 一八四O年(1840년)부터 南北戰爭始期(남북전쟁시기)까지가 그最高潮(최고조)인데 『뿌릭이안트』 『롱구헤로』 『와이리어』와 더부러 黑人(흑인)들은 急(급)작히 詩作(시작)으로 그들의 反奴隸感情(반노예감정)을 高唱(고창)하였다。그主要(주요)한 詩人(시인)들은 『다니엘 레인』 『알스리─즌』 『죠─지바숀』 『에리미스·로가스』等(등)이었다。南北戰爭前(남북전쟁전)의 美國詩人詩(미국시인시)는 大體(대체)로 當時(당시)의 詩潮流(시조류)에 따르게되었다。黑人(흑인)의 生活(생활)과 性格(성격)같은것은 詩人(시인)들의 關心(관심)에서 떠러저있었다。詩人(시인)들은黑人(흑인)으로 노래할때 그들은 언제나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抽象的(추상적)으로 보고 『自由(자유)와 奴隸(노예)』 『解放(해방)과 束縛(속박)』 『德性(덕성)과 惡(악)』같은 主題(주제)를 즐겨 取扱(취급)하였다。間或(간혹) 黑人(흑인)의 性格(성격)을 그린다하여도 그것은 感動的(감동적) 感興(감흥)을 이끌기 爲(위)한 것이지 一般的黑人(일반적흑인)을 象徵(상징)하기 爲(위)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그 솜씨에 있어서 當時(당시)의 黑人(흑인)의 敎育狀態(교육상태)와 比肩(비견)하야 그들은 非凡(비범)한 技能(기능)을 發揮(발휘)하였으며 黑人(흑인)의 先天的(선천적)인 無智性(무지성)이란 억울한 ?告(고)에 明白(명백)한 反證(반증)을 찍어 놓은것이다。

南北戰爭(남북전쟁)이 끝난後(후)에야 겨우 黑人(흑인)들은 그들自身(자신)의經驗(경험)을 反奴隸運動(반노예운동)의 有用(유용)한 材料(재료)로 쓸줄을 알었다。 再建期(재건기)에 있어서 『南部白人(남부백인)·鄕士(향사)』派(파) 文學家(문학가)들은 서로 다무에서 黑人(흑인)의 鄕土的(향토적) 固有文化(고유문화)를 取扱(취급)하였고 美國(미국)을 宣傳(선전)하는 目的(목적)으로 黑人(흑인)을 性格(성격)으로 그리기에 熱中(열중)하였다。『아─윙、랏세』 『시드니、래니루』 『도마스、넬슨、페일』같은 作家(작가)들이 即(즉) 이派(파)인데 그들은 輸入(黑奴(수입흑노)의 據處(거처)인 옛적南部地方(남부지방)의 ?鄕的(향적) 詩(시)를 熱情(열정)으로 불렀던것이다。十九世紀(19세기)의 末期(말기)에 이르러 黑人(作家(흑인작가)들은 자미있는 問題(문제)에 直面(직면)하었다 그것은 『아이리슈』 人(인)들이 英國人(영국인)의 『舞台(무태) 아이리슈』化(화)하는 그들의民族性(민족성)에 反對(반대)하야 그들自身(자신)의 生活(생활)과 性品(성품)을 自身(자신)의 角度(각도)에서 본다는 文藝思潮(문예사조)이다。그것은 即(즉)(1)從來(종래)의 白人(백인)의 黑人(觀(흑인관)과 反對(반대)되는 眞正(진정)한 黑人世界觀(흑인세계관)을 確立(확립)할것 (2)深刻(심각)한 寫實主義(사실주의)로 黑人自身(흑인자신)의 性格(성격)과 生活(생활)를 深化(심화)하는 것 의 두가지 課題(과제)이다。이 새로운 文學運動(문학운동)의 極端(극단)을 나간것이 即(즉) 『알버리·휘트맨』인데 그는 從來(종래)의 原始的(원시적)인 半(반)버버리 소리같은 사투리 抒情詩(서정시)에 反對(반대)하야 極度(극도)로 理想化(이상화)한 英雄(영웅)을 長文(장문)의 詩(시)에 부쳐서 노래하였다。長詩(장시)『사람은 아니나 그래도 사람인 사람』(一八七七(1877))은 黑人詩中(흑인시중) 가장 긴 詩(시)인데 그것은 英雄的(영웅적)인 混血奴隸(혼혈노예)를 取扱(취급)한것이다。一八八四年(1884년)에 그가 發表(발표)한 『후로리다의 掠奪(약탈)』이란 長詩(장시)는 美國史上(미국사상) 가장 慘酷(참혹)한 『쎄비놀』家族(가족)과 그의 黑人同志及(흑인동지급) 家族(가족)이 『후로리다』를 쫓겨서 西部(서부)로 移動(이동)하는 悲愴(비창)한 場面(장면)을 그려낸것이다。다음에 나온 才士(재사) 詩人(시인)은 『폴·로렌스·둔바』인데 그는 벌서 어려서부터 詩作(시작)에 ?入(입)하고 그의 詩(시)는 喜劇(희극)포스터에 나오는 黑人(흑인)을 情操(정조)깊은 寫眞(사진)으로 代置(대치)하였다。

그는 氣質的(기질적)으로 樂天的(낙천적)인 觀察者(관찰자)이지 改革者(개혁자)는 아니었다。『윌리암·단·호웰』이稱讚(칭찬)한바와같이 『둔바』는 黑人(흑인)의感情(감정)을 直?的(직?적)으로 느끼고、그것을 抒情的(서정적)으로 表現(표현)한 第一(제일)의 黑人詩人(흑인시인)이라고 할만하다。그의 詩(시)에 그려진 黑人固有(흑인고유)의 生活狀態(생활상태)며 性品(성품)은 牧歌的(목가적) 田園的(전원적)이기는 하나 그래도 人間性(인간성)을 띠운 黑人(흑인)을 가득가득히 그렸으며、從來(종래)의 道化(도화)役(역)黑人觀(흑인관)을 고치는 힘이컸다。『둠바』는 黑人(흑인)사투리의 詩(시)보다 標準英語(표준영어)의 詩(시)를 더많이썼다。그리고 그는 直接(직접) 反抗(반항)의 붓을 들지는 않고 겨우 “우리는 假面(가면)을 썼다”等(등)으로 그의眞意(진의)를 示晙(시준)하고있으나 『도우크라스』 『스토우』 『로바드·존·쇼』等(등)에 보낸短歌(단가)로 보아 그가 얼마나 그의同胞(동포)를 사랑하고 애끌른 熱情(열정)을 쏟았는가를 能(능)히알 수있다。그의 사투리詩(시)는 그後(후) 여러 追從者(추종자)들의 模範(모범)이 되었다。그러나 二十世紀初期(20세기초기)의 黑人文學(흑인문학)은 또다시 南北戰爭後(남북전쟁후)의 그들의 不法虐待(불법학대)를 呼訴(호소)하는 潮流(조류)를 낳지 않을수없었다 이러한 作家中(작가중) 가장激烈(격렬)히 攻擊(공격)의 붓을 들었으며 따라서 가장큰 影響(영향)을 끼친 詩人(시인)은 實(실)로 『W·E·B·두보이스』일것이다當時(당시) 『아트란타』大學(대학)의 敎授(교수)로있던 그는 原來詩人(원래시인)은 아니었으나 一九O五年(1905년)의 『아트란타』 暴動(폭동)을 目擊(목격)하고 그것을 主題(주제)로하야 쓴 『어두운물』(一九一九年發行(1919년발행))이란 選集中(선집중)에 몇가지 詩(시)를 실려 人種的不平等(인종적불평등)과 同胞(동포)의 虐待(학대)에 對(대)한 불같은反抗(반항)을 쏟아부었던것이다。

二十世紀(20세기)의 十年代(10년대)에는 여러黑人(흑인)군이나와 새로운 詩型(시형)을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純粹派(순수파)』라고도 할수있을것이다。그들은 人種的偏見(인종적편견)과 生活苦(생활고)와 差別的待遇(차별적대우)、虐待(학대)、抑壓(억압)等(등)의 참기 어려운 苦境(고경)을 避(피)하고 이것을 억지로 廻避(회피)하기爲(위)하야 所謂(소위) 純粹派(순수파)라는 이름밑에 사랑과 죽엄을 主題(주제)로하는 洗鍊(세련)된 抒情詩(서정시)等(등)을 만들어내었다。黑人詩(흑인시)에 對(대)하야、가장 아는것이많고 또가장 黑人詩(흑인시)를 사랑한 이러한 作家(작가)들은 스스로 그詩作(시작)을 逃避性(도피성)에 局限(국한)하고 또 『가슴속에 그리는世界(세계)』를 夢想(몽상)하고 그것을 되푸리하는데 熱中(열중)하였다。『죠─지·미크레란』 『레스리·핀크레인』 『벤자민부로우래』 等(등)의 詩人(시인)이 이派(파)에 屬(속)한다。

『제임스·웰돈·죤슨』의詩(시)는 이때까지의 어느 黑人詩(흑인시)보다 價値(가치)많은 것이었다。그는 처음부터 人種差(인종차)라는 事實(사실)을廻避(회피)할려고하지않었다。『죤슨』의 “五十年(50년)”이라는 詩(시)는過去(과거)의 解放歌(해방가) 『린크른家(가)』 『에디오피아』歌(가)等(등)보다 더욱 黑人詩(흑인시)다운 것이되었다。그는 ?台(태)에서 墮落(타락)한黑人(흑인)의 사투리이 原形(원형)을 찾어볼려고 새로운經驗(경험)을 겪었으며 그는眞正(진정)한鄕土言語(향토언어)의 記錄(기록)를 만들었던것이다 그의 詩(시)는 여러번 變遷(변천)하였다。抒情的(서정적)인 黑人擁護詩(흑인옹호시)로부터 浪漫的抒情詩(낭만적서정시)로 그리고 傳統的(전통적)인 地方(詩(지방시)로 들어가 黑人(흑인)의 『이디옴』을 그대로 나타내는데 成功(성공)하였다。

一次大戰中(일차대전중)과 大戰直後(대전직후)의 情勢(정세)는 美國(미국)에 있어서의 黑人(흑인)의 動向(동향)에 큰 社會的(사회적) 變更(변경)을 주었다。南部(남부)에있든 黑人(흑인)들은 대々的(적)으로 北部都市(북부도시) 『뉴욕』 『핏츠부르구』 『데트로이트』 『시카고』 『센트루이그』 『칸사스』 市(시)같은 곳에 移住(이주)하여왔다。거기에는 勞動(노동)의權利(권리) 及(급) 힘에關(관)한 새로운 意識(의식)이 이러나고 있었으며 人種差別(인종차별)을 基本(기본)으로한團結(단결)、單體組織(단체조직)의 重大性(중대성)에 對(대)한 覺醒(각성)이 이러났으며 또 몇몇 有能(유능)한 進步的(진보적) 指導者(지도자)들은 黑人問題(흑인문제)를 勞動階級問題(노동계급문제)로 轉換(전환)하야 이끌었으며 激烈(격렬)한演說(연설)로 或(혹)은 溫和(온화)한學問(학문)으로 有色人種(유색인종)의 自矜心(자긍심)을鼓吹(고취)하는 것이 일어났으며 또鬪爭的(투쟁적)氣運(기운)의勃發(발발) 어떤部面(부면)으로는 戰爭(전쟁)에參加(참가)하고 또 重(중)?工場(공장)에 들어가는運動(운동)으로 또 壓倒的(압도적)인 南部(남부)에 들어 백이지않고 自由(자유)로운 北部(북부)로 가는 것으로 또 戰後(전후)의??한 解放主義(해방주의)에 기운을얻은 黑人(흑인)들의 人道的解放(인도적해방)의 부르지즘으로 急速(급속)히 黑人社會(흑인사회)는 變動(변동)하기 始作(시작)한것이다。黑人(흑인)의作品(작품)은 이러한 모든變動(변동)을 反映(반영)하지만 그中(중)에도 黑人詩(흑인시)는 이變化(변화)를 재는 尺度(척도)가될수 있는것이 『죠지아·도우그라스·죤슨』 『안제나·그림케』 같은 詩人(시인)에게는 아직 『데리게이트』한 抒情詩(서정시)風(풍)이 남어있었으나 一般的(일반적)으로는 좀더 기운찬 社會相(사회상)을 띄운 作品(작품)이 나오기始作(시작)하였다。『훤톤·죤슨』은 後(후)에 『랑그스튼·호우스』 『스터링·뿌로운』같은 社會寫實派(사회사실파)의 先(선)?을 가는것이다。批評家(비평가) 『아미·로웰』 『해이에트·몬로』 『루이스·안타미어』 等(등)의 先導(선도)로 이러난 新詩運動(신시운동)은 『에드윈·A·로빈슨』 『후로스트』 『칼싼드부루구』같은詩人(시인)을 낳아 全國的(전국적)인 影響(영향)을 주었던것이다。이 새로운運動(운동)은 從來(종래)의 感傷主義(감상주의)、敎訓主義(교훈주의)、樂天主義(낙천주의)、浪漫的(낭만적) 逃避主義(도피주의)、及(급) 詩語使用主義(시어사용주의)를 排擊(배격)하였는데 그것은 黑人詩(흑인시)에 對(대)한 크게 有用(유용)한 일이었다。『크라우드·미케이』의 大作(대작)『할렘의 그림자』(一九二二年出刊(1922년출간))는 이 새로운 詩運動(시운동)의 初(초)?品(품)인데 그中(중)에는 社會的(사회적) 經濟的(경제적) 不公正(불공정)을 ?烈(렬)히 反駁(반박)하고 또 抒情的(서정적)으로 옛적의 自由時代(자유시대)를 그리워하는 ??詩(시)를 실렸던것이다。그의詩集(시집) 『우리가 죽어야 한다면』은 一次大戰後(일차대전후) 各地(각지)에서 이러나는 피비린高喊(고함)과 黑人(흑인)을 黑人(흑인)의世界(세계)로 美大陸(미대륙)의 主人(주인)의 자리로 돌려 보래달라는 呼訴(호소)와 黑人(흑인)의?起(기)를 그린 것이다。一九二五年(1925년) 前後(전후)의 『쿠렌』의活動(활동)을이어 『랭그스톤·호우스』의 詩(시)가 나왔다。그의詩(시)는 어느形式(형식)에도 拘束(구속)을 받지않고 또 抒情味(서정미)는 그리 없었다。그는 끝없는 經驗主義者(경험주의자)로서 『부르스』 形式(형식) 또는 短(단)?詩(시)形(형)으로 그때의 流行(유행)인 사랑과 죽엄이란 것보다 痛快(통쾌)한『캐바레』의 享樂(향락)、放浪(방랑)의 『피아노』 伴奏者(반주자)、浮浪兒(부랑아)와 淑女(숙녀) 같은題目(제목)을 取扱(취급)하였으며 黑人全體(흑인전체)의 生態(생태)를 그릴려고 애썼으며 複雜(복잡)한것을 避(피)하고 直(직)?하였다。『호우스』 『쿠렌』 等(등)의 詩作(시작)은 黑人(흑인)의 新文學運動(신문학운동)의 ??인것인데 그들은 『아푸리카』를 美化(미화)하는데 單純(단순)한 『로만티즘』을 넘어서 確信的(확신적)인 것으로 그려내었으며 黑人美(흑인미)의發見(발견)을 稱頌(칭송)하면서 또 黑人歷史(흑인역사)의 再認識(재인식)을 高唱(고창)하면서 그들은 人間的(인간적) 自尊心(자존심)으로 길렀던 것이다。

『할렘市(시)가 新黑人運動(신흑인운동)의 中心地(중심지)인 것은 『뉴욕』이 出版業(출판업)의 中心地(중심지)인 것과같이 自然(자연) 스러운 일이다。?賞(상)文學(문학)은 『찰스·S·죤슨』의 主幹(주간)인 『오퍼츄니티』誌(지)와 『W·E·B·듀보이스』主幹(주간)의 『더·크리스』誌(지)에 依(의)하야 領導(영도)되고 있다。그러나 『미크케이』와 『쿠 렌』을 除外(제외)하고는 新黑人(신흑인) 詩人(시인)들은 決(결)코 『할렘』派(파)는 아니다。『미크 케이』는 同(동) 運動(운동)의 絶頂期(절정기)에 蘇聯(소련)에 있었다。當時(당시) 美洲全面(미주전면)에 걸쳐서 黑人作家(흑인작가)들은 活躍(활약)을 展開(전개)하였다。

『미씨씨피』州(주)에서는 『요나단·부룩스』가 『북캐로리나』에서는 『죠─지·아렌』이 『버지니아』州(주)에서는 『아네·스펜서』가 『미조리』 『테레씨』州(주)에서는 『스터링부로운』이 『아트란타』와 『시카고』에서는 『후랑코·M·대네스』 等(등)이 各(각) 各(각) 活躍(활약)하였다。『스터링· 뿌로운』의 『南部(남부)道路(도로)』(一九三二年(1932년))를 主(주)로 南部地方(남부지방)의 性格(성격)과 景致(경치)의 敍事文(서사문)인데 그 中(중)에 실린 詩(시)는 主(주)로 南部黑人(남부흑인)들의 喜悲哀樂(희비애락)의 生態(생태)를 그린 것이 었다。『뿌로운』의 作品(작품)은 美國文學史上(미국문학사상) ??主義(주의)及(급) 社會改革派(사회개혁파)에 屬(속)하는데 그의 選集(선집)은 아직出刊(출간)되지 않었다。近來(근래)의 젊은 有爲(유위)한 黑人詩人(흑인시인)은 『후랑크·마─샬·대비스』 『리차─드·라이트』 『W·B·톨슨』 『로바─르·하이덴』 等(등)의 少壯詩人(소장시인)들이다。『대비스』는 (黑人(흑인)의노래 一九三五年(1935년)) (나는 美國(미국)黑人(흑인)이로다 一九三七年(1937년))을 出刊(출간)하야 强力(강력)한 社會批判(사회비판)을 展開(전개) 하였으며 『톨슨』及(급) 『라이트』의 詩(시)로 大略(대략) 그와같은 社會意識(사회의식)과 人種同等(인종동등)을 爲(위)한 呼訴(호소)로 가득차고 있다。이에앞서 『요슈아·와이트』는 『南部(남부) 暴露(폭로)』 라는 階級文學(계급문학)을 내었는데 新黑人文學運動(신흑인문학운동)중 魅力(매력)있는 抒情詩(서정시)를 쓰던 『와링·쿠니이』는 이제와서는 『푸로레타리아트』文學(문학)과 被壓迫階級(피압박계급)의 悲劇(비극)及(급) 同階級(동계급)의 擁護(옹호)를 부르짖고있、이에 따라서 『대 비 스·W·캔손』의 『黑人勞動者(흑인노동자)』(一九三九年(1939년))같은것도 나왔다。『마─가렐키월가』 『오엔·도드쓴』같은 新人(신인)은 至今(지금) 社會的(사회적)으로 尊重(존중)을 받고있는 詩人(시인)이다。黑人詩(흑인시)는 黑人文學(흑인문학)의 어느것보다 더 많다。詩作(시작)은 아직도 美國黑人(미국흑인)의 가장 一般的(일반적)인 文學運動(문학운동)이다。그러나 그러한 詩(시)는 驪興的(여흥적) 逃避的(도피적)인 것으로만 끝칠수도없다。詩(시)란 所與(소여)된것에만 拘束(구속)을 받[는]것이 아니라도 意見(의견)은 近來(근래) 黑人(흑인)間(간)에도 黑人詩(흑인시)는 좀더 黑人主題(흑인주제)로부터 떠나야 하겠다는 意見(의견)이 나오고 있다。그러나 詩(시)란 또 언제나 單純(단순)히 抒情的(서정적)主題(주제)만을 取扱(취급)할 수는 없고 그것은 自然(자연) 그詩人(시인)의 詩(시)를 通(통)한 劇化(극화)된 說話的(설화적) 哲學的(철학적) 世界觀(세계관)이 나와야 하는것이다。黑人詩(흑인시)는 이때까지 詩自體(시자체)보다도 反抗(반항)을爲(위)한 詩(시) 에 기우러 젔다。그러나 이제와서는 宣傳(선전)은 詩(시)가 될수없다는것을 알게되었다。黑人詩(흑인시)의 現狀(현상)은 美國(미국)內(내)의 黑人(흑인)의 處地(처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며 來日(내일)의 黑人詩(흑인시)는 來日(내일)의 黑人實情(흑인실정)에서 나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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